춘장대 해변은 무척 넓고 단단하고 편평하다. 해변 북쪽에 갯바위가 있었는데 누군가 널따란 독살을 펼쳐놓았다. 돌을 얼마나 넓게 펼쳐 쌓았는지 고래도 잡을 만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. 작은 게들만 바쁘게 왔다 갔다 할 뿐이다.
해변 뒤편 언덕에 쌓인 모래가 얼마나 가는지 바람에 날려 다녔다. 손에 묻으면 반짝거리고 떨어지지 않았다. 언덕에 펜션과 식당들이 있고 그 뒤로 아카시아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뤘다. 여름날이면 여기저기 텐트와 돗자리 펴고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좋을 것이다.
춘장대는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어 갯벌생태학습장으로 알려졌다. 또 전국 10대 해수욕장이나 꼭 가봐야 할 낭만피서지로 꼽힌다.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꼽는지는 잘 모른다. 그건 사람들 생각이다. 갯벌을 다니며 백사장에 그림을 새기는 소라나, 소라게들을 보면 해변이 사람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. 작은 생물들이 모래에 새긴 문양은 아무래도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다.
요즘은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. 보령 대천, 강릉 경포대는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붐빌 정도다. 춘장대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. 그렇다고 편의시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호젓하게 봄을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.
춘장대 남쪽에 간이역이 하나 있다. 역 이름도 춘장대역이다. 기차역이 있으니 기차 타고 갈 수 있을까? 애석하게도 대중이 이용하는 기차는 가지 않는다. 춘장대역에는 매표소도 지키는 사람도 없다. 장항선에서 갈라지는 이 노선은 서천화력선이라 부르는데 무연탄을 서천화력발전소까지 나르는 사설철도다.
춘장대 남쪽에 육지가 갈고리 마냥 바다로 나간 작은 반도가 있다. 지도로 보면 구부린 매의 발 같아 보인다. 반도 끝 발톱에 해당하는 곳에 포구가 하나 있다. 동백꽃 필 무렵이면 주꾸미로 유명한 마량포구다. 길은 반도를 가로지르는 외길 하나뿐이다.
마량포구 가기 전에 바다 쪽으로 서천화력발전소가 있다. 화력발전소가 포위한 바다 쪽에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정자가 하나 있다. 화력발전소 정문을 지나면 주차장이 나오고 매표소가 있다. 화력발전소 풍경과 썩 어울리지도 않는데 공원처럼 꾸며놓고 입장료도 받는다.
동백숲을 올라 정자에서 바다보고 솔숲을 걸어 내려오는 이 길은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. 그런데 돈을 내라니 좀 아까운 생각도 든다. 동백나무가 오백 년은 되었다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려다보니 그런듯하다. 서쪽으로 바다를 보고 동쪽으로 동백숲을 본다. 동백나무들이 무척 굵은데 바닷바람 때문에 키를 키우는 대신 옆으로 가지를 뻗었다.
마량포구는 바다로 툭 튀어나간 갈고리 끝에 있다. 덕분에 양쪽이 바다이다. 방파제로 걸어나가면 아침에는 바다에서 해가 뜨는 걸 보고 저녁에는 일몰을 볼 수 있다. 한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지형으로 처음 이름난 곳이 당진 왜목마을이다.
왜목마을에 사람들이 북적이자 서천 사람들도 생각했을 것이다. ‘우리 마량포구도 그런데?’ 결국 일출, 일몰을 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졌고 덕분에 사람들이 찾아온다. 마량포구는 어항이다. 그래서 제철 산물이 많이 날 때마다 축제도 열린다. 광어축제, 대하축제 등. 동백꽃이 한창인 이른 봄에는 주꾸미축제가 열린다.
주꾸미는 2~3월 봄에 알을 품는다. 우리가 머리라고 생각하는 둥근 부분이 사실은 몸통이다. 그 몸통 가득 알이 차는데 쌀알처럼 보인다. 맛도 비슷해 쌀알 씹는 듯 퍽퍽한 감이 있다. 알밴 주꾸미는 별미라고 생각해 이른 봄 많이 찾는다.
마량포구 마을 앞 널따란 공터를 공원으로 잘 단장했다. 주꾸미축제가 열리면 이 공원은 인산인해를 이룬다.
마량포구로 들어가는 길이 외길이라 밀리면 주차장이 된다. 평소라면 춘장대에서 15분이면 들어가는 거리인데 밀리면 두 시간도 걸릴 수 있다.
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주말에는 흥원항으로 가는 게 낫다. 반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 거리도 가깝고 항구도 더 크다. 흥원항 방파제에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근사한 전망대도 있고 어시장도 마량포구보다 더 큰 편이다. 흥원항 역시 제법 알려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적하면서 싱싱한 제철 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들 한다. 사실 같은 서천 바다이니 나오는 산물도 같고 일몰도 비슷하다.
춘장대가 있는 해안 위쪽에 보령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 등 이름난 해변이 많다. 춘장대는 남쪽 끝부분에 있어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경향이 덜하다. 한여름만 아니라면 차분한 바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. 이른 봄이라면 한적함에 오히려 낯설지도 모른다. 아무려면 어떤가. 봄이 흐르는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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